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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하고 일할까

친한 형이 이 영상을 보라고 해서 봤다. 인터뷰에 나온 사람은 반도체, 자동차, Emerging Market, 클라우드 분야를 거친 30년 경력의 디렉터다. 현재는 Marvell에서 프로그램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다. AI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이 업계 선택, 산업 전망, 취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마침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자공학과에 다니고 있고, 다음 학기에 학부연구생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우리 학교의 연구실은 크게 반도체 소자, 회로 설계, 무선 통신, AI 쪽으로 나뉜다. 그중 어디로 들어갈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있었고, 앞에서 한 말이랑 왜 다르냐고 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기억해두고 싶은 이야기와 내 생각을 함께 적어본다.

지금 뜨는 분야를 골라야 할까

어떤 업계에서 일해야 하는가. 원하는 업계가 잘 마련된 국가로 가야 하는가. 영상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지금의 유행으로 먼 미래의 진로를 정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한때는 4차 산업혁명이었고, 지금은 AI다. 영상 속 설명은 꽤 냉소적이었다. 업계에서 실제로 기술을 개발하는 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비즈니스를 이어가기 위한 이야기는 계속 바뀐다는 취지였다.

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다녀오고, 학사와 석사를 마치기까지 대략 8년을 잡아보자. 지금 주목받는 메모리 반도체나 원자력이 그때도 같은 관심을 받을까. 영상에서는 광학이나 무선, 네트워크 같은 다른 분야로 관심이 옮겨갈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다음 유행을 미리 맞혀 그쪽으로 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8년 뒤의 유행을 추측하는 대신, 지금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해 깊게 파라는 조언이었다.

이건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처음에는 반도체 소자 쪽을 노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장 핫하니까. 그런데 조금만 시간을 돌려보면 LTE니 4G니 하면서 통신 이야기가 한창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석사를 마칠 즈음에는 다시 통신이 대세가 될까. 아니면 지금은 생각도 못 한 다른 기술이 대세가 될까.

기술에 주기가 있어서 차례가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주기가 있다고 해도 내가 그 시점을 맞힐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통신이 다시 뜰 것 같아서 통신을 고르는 것도 결국 같은 도박이다.

나는 8년 뒤도, 10년 뒤도 예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것, 정말 좋아해서 오래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원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업계에서 이것저것 겪어본 사람이 똑같이 말을 하니 내심 뿌듯했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그렇게 몇 년을 공부했다고 해서, 나중에도 해온 것에만 매달리지는 말라는 것. 쌓아온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열린 태도를 가지라는 이야기였다.

이 부분까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연구실을 고르는 일이 내 평생의 분야를 확정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무겁다. 우선 깊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고르되, 나중에 다른 문제에 관심이 생기면 지금 배운 것을 들고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유행을 볼 때 확인할 세 가지

그렇다고 모든 유행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떤 기술이 실제 산업으로 자리 잡을지 판단할 방법은 있어야 한다.

영상에서는 AI와 함께 거론되던 IoT, VR/AR, 드론, 웨어러블 등이 왜 기대만큼의 열기를 이어가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기대가 실제 수요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반대로 세 가지가 갖춰져 있다면, 그저 거품으로 끝날 이야기인지 판단할 때 좀 더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나는 블록체인과 메타버스가 떠올랐다. 나도 2019년에 관련 산업으로 잠깐 일했었는데, 그때의 열기를 생각하면 아직도 좀 허무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열기를 이 세 가지 질문에 비춰보고 싶어진다.

기술이 신기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필요하더라도 너무 비싸면 쓰기 어렵다. 세 조건을 나란히 놓으니 당시의 허무함을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걸로 다음에 뜰 산업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 미래를 이야기할 때 물어볼 질문은 생긴다. 실제로 되는가. 누가 쓰는가. 그 돈을 내고도 쓸 것인가.

좋아하는 걸 하라더니, 취업할 때는

취업과 인턴 기회를 구하기 어렵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좀 걸렸다.

내가 받아들인 답변의 요지는 이랬다. 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서울의 화이트칼라처럼 자신이 원하는 수준과 조건의 직장에 취업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지방이나 노동집약적인 업종에는 여전히 사람을 구하는 곳이 있으니 눈을 낮추고,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위한 일을 분리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일을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좀 좆같았다.

아까는 좋아하는 분야를 정해서 깊게 파라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몇 년씩 공부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취업 이야기에 이르니 좋아하는 것과 일을 분리하라고 한다. 워라벨을 챙기면서 40대 이후의 레이오프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이야기까지 함께 듣고 나니 더 헷갈렸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일에 깊이 몰입해야 한다는 건지, 일은 생계 수단으로 두고 좋아하는 건 따로 하라는 건지.

공부할 분야를 고르는 문제와 당장 생계를 유지할 직장을 구하는 문제는 다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조언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 차이까지 이해 못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앞의 조언을 따라 시간과 노력을 들인 사람이 원하는 분야에 진입하지 못했을 때, 뒤의 조언은 너무 쉽게 그 사람의 눈높이를 문제 삼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궁금한 건 그 사이의 이야기다. 지속해온 분야를 얼마나 오래 붙잡아야 하는지, 어떤 조건에서는 다른 일을 택해야 하는지.

어딘가에 빈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질문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연구실을 고르며 앞으로 몇 년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는 나에게는, 눈을 낮추라는 말만으로 앞뒤가 연결되지 않았다.

앞부분에 크게 동의했기 때문에 이 대목이 더 걸렸던 것 같다.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

네트워킹에 관한 조언은 유용했다.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끼리만 만나는 수평적 네트워킹에 더해, 나보다 경험이 많거나 적은 사람과도 연결을 만들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대화를 통해 상대에 맞춰 설명하는 능력을 기르고, 때로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생각해보면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내가 놓친 부분을 짚어줄 수 있고, 후자에게 설명하려면 내가 당연하게 넘기던 내용부터 풀어야 할 수 있다.

영상에서는 LinkedIn으로 1촌 신청을 하면서 메시지를 함께 보냈고,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경험을 소개했다.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부터 계산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하라는 말도 기억에 남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말을 걸고 연결을 만드는 일도 떠올렸다. 이력과 작업물, 각종 정보가 데이터로 오가는 시대다. 그런 정보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내가 왜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어디에서 막혔는지, 어떤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이다.

직접 대화하면 그런 주관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상대가 공개해둔 이력을 읽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연결 요청을 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나라면,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전해오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일 것 같다.

물론 아직은 내 추측이다. 내가 직접 해보고 얻은 결과는 아니다. 그래도 유행을 맞히려고 혼자 머리를 싸매는 것보다는, 관심 있는 분야를 실제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는 편이 연구실을 고르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